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워런 G. 하딩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>"나는 대통령직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며 이 직책을 맡지 않았어야 했소." >---- >친구이자 컬럼비아 대학교 총장이었던 니컬러스 머리 버틀러(Nicholas Murray Butler)[* 참고로 이 사람은 191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 [[윌리엄 하워드 태프트]]의 러닝메이트였다.]에게 보낸 편지 [[미국]]의 제29대 [[미국 대통령|대통령]],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그 평가가 절대적으로 낮은 인물이다. [[정치]]와 [[사생활]]을 막론하는 무능한 행적으로 인하여 미국인들이 가장 안 좋아하는 대통령을 조사할 때마다 절대적 1위를 지키고 있는 인물이다. 그나마 다행히도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에선 꼴찌를 면하는 경우도 많다.[* 사실 이것도 21세기에 들어서 제임스 뷰캐넌, 앤드루 존슨, 프랭클린 피어스가 최하위권에 위치한 덕이 큰 것이지 20세기 때는 '''꼴찌는 항상 이 양반이 맡았었다'''. 지금 만년 최하위라고 하는 뷰캐넌은 적어도 앤드루 존슨 덕에 꼴찌를 면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20세기 때 하딩은 조사를 할 때마다 예외 없이 최하위였을 정도였다. 근데 그 올라간 순위도 밑에서 5위권이라는 게 함정이었다. 그나마 2021년에는 뒤에서 8위까지 올라가며 최하위권 이미지를 벗나 싶었으나 2022년에는 아니나 다를까 다시 뒤에서 4위로 내려가며 최하위권 이미지를 벗기는 힘들 듯하다.] 사실상 공화당의 승리가 확정인 상황에서 공화당 내부 파벌들끼리 '그냥 우리가 다루기 쉬운 호구를 뽑자'는 식으로 당선된 인물이라 주변 상황이 안 좋았을 뿐만 아니라 부정부패가 만연했고, 본인도 상당히 무능했다고 평가받으며 사생활조차 좋지 않았다. 다만 후대의 평가와 달리 집권 시절에는 나름 인기가 좋은 편이었다.[* 당시 선거 득표율이 무려 60.3%였는데,이는 이전에 부통령을 거치지 않고 바로 대선에 출마한 대통령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다.] 일단 얼굴이 상당히 잘 생겼을 뿐만 아니라, 당시 미국인들은 1차세계대전과 윌슨의 삽질 등으로 상당히 지쳐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.[* 1차세계대전 종료 시점에서 미국인들은 승전국으로서 환호했지만, 시간이 지나자 돌아온 것은 높은 물가와 대륙 너머에서 죽은 군인들 뿐이었고, 그 와중에 대통령은 민족자결주의를 주장하는 등 육체적, 정신적으로 국제 관계에 진절머리가 난 상태였다.] 당시 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이런저런 국제 정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유능한 대통령보다는, 차라리 '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' 대통령을 원했다는 분석이 있다.[* 실제로 하딩의 주요 선거공약은 "정상 정치로의 복귀"(Return to Normalcy)였으며 집권 내내 미국 고립주의를 표방했다.] 이후 대공황의 후버와 2차 세계대전의 루스벨트로 이어지는 만큼, 여러의미에서 미국의 ''''쉬어가는 대통령' '''으로 여겨진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